아름다움을 고백한다 - 구본창의 사물 사진

글. 김영민

 

“사물들 스스로도 한 번도 진정으로 표현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제 9비가

 

프롤로그-사진가의 소명  

사물 사진은 대상을 떠날 자유가 없다. 사진은 그림이 아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붓 가는 대로 그릴 수 없다. 카메라는 대상을 직면하고 그 물성(物性)을 가차 없이 찍어내야 하는 기계다. 그리하여 사진에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상의 모습이 담긴다. 이렇게 사진은 대상을 증명한다. 롤랑 바르트( Roland Gérard Barthes, 1915-1980)가 말한 것처럼, 사진은 “실재의 낙인”이다.

사진가는 그러한 대상지향의 기계를 가지고 세계를 응시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세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는 세계, 혹은 대상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사진에 자기 마음을 싣고 싶어도, 일단 대상을 거쳐야 한다. 대상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싶어도 일단 대상을 경유해야 한다. 물성 이상의 것을 구현하고 싶어도 반드시 물성을 통과해야 한다. 숨은 면모를 드러내고 싶어도 이미 드러난 면모를 간직해야 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보여주면서, 아무나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결국, 보이는 것을 보여주면서, 보이는 것 이상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사진가의 소명이다. 구본창은 이 소명에 어떻게 응답했나.

 

사진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사람들은 한때 사진의 증명력이 대단하다고 여겼다. 알퐁스 베르티옹(Alphonse Bertillon 1853-1914)의 경우를 보라. 그는 범죄자 신원 확인을 위한 체계적인 사진 아카이브를 개발했다. 상습범들의 이미지를 부위별로 나누어 아카이빙해서, 곤경에 빠진 경찰을 도왔다. 그의 범죄자 아카이빙 방식은 그 유용성을 인정받아, 1883년 경부터 유럽과 미국 경찰국에 널리 퍼져나갔다. 베르티옹의 부모가 통계전문가였다고 하니, 대를 이어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확증해온 열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범죄자들은 가명을 즐겨 썼고, 사람의 얼굴은 바뀌기 마련이라, 이런 분류작업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20세기에 들어와 얼굴 사진이 아니라 지문이 사람판별작업을 보완하거나 대신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이런 시도는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 있기에 가능했다.

사진가들도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통해 시대와 인간의 증인이 되려 했다. 예컨대, 독일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1876-1964)는 독일인의 표정을 담기 위해 20세기 전반기에 2,500점이 넘는 인물사진을 남겼고, 스위스 태생의 미국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1924-2019)는 미국인들을 포착하기 위해 1950년대에 “미국인들”이라는 작업을 했고, 헬마 레르스키(Helmar Lerski 1871-1956) 역시 “일상의 얼굴”이란 작업을 통해 뭔가 비참함이 깃들어 있는 인물 사진들을 찍었다. 한국의 사진가 오형근의 “아줌마 시리즈”나 “여고생 시리즈” 역시 크게 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 가차 없이 대상을 찍어버리는 기계적 특성 때문에, 사진은 그림보다 더 진상을 혹은 진실을 잘 담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그러나 사진은 정녕 대상의 진실을 포착하는가. 사진을 찍고 나면 다양한 방법으로 그 사진을 보정할 수 있다. 그뿐이랴. 단순한 보정뿐 아니라 10년 후, 20년 후의 모습을 예측해서 보여주는 앱, 귀여운 얼굴로 바꾸어주는 앱, 다른 성별의 모습으로 교체해주는 앱도 있다. “사진 잘 나왔어?” “응, 잘 나왔어.” 이와 같은 대화에서 “잘”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진상”을 그대로 담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진면모보다 더 잘생기게 찍혔다는 뜻일까. 아니면 특정 목적에 맞도록 찍혔다는 뜻일까. 사진이 포착하는 진실이란 대체 무엇일까.

사진이 순진하지 않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사진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사진이 대상을 증명하는 만큼이나 진상을 은폐하거나 치장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진찍기란 결국 유동하는 흐름에서 무엇을 건져내어 선택적으로 박제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진가는 앵글을, 조명을, 배경을, 마침내 순간을 의식적으로 선택함으로써 “나름의” 진실에 접근한다. 아우구스트 잔더나 로버트 프랭크나 헬카 레르스키의 수많은 인물 사진들조차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대상으로부터 소수의 유형과 앵글과 조명과 배경과 순간을 “선택”한 결과다.

 

구본창은 선택한다

구본창도 선택한다. 구본창은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사람보다는 사물을, 거대한 것보다는 소소한 것들을 선택한다. 그는 좀처럼 기념비나 승전탑 같은 것을 찍지 않는다. 드러내겠다는 욕심이 과한 것만큼 관심을 식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이미 거대한 것, 이미 확대된 것, 이미 아름다운 것에 우리가 굳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1880-1942)은 기념비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사람보다는 사물인가. 사진이 가진 폭력적, 탈취적 성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사람들은 긴장한다. 상대가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상대가 허가하지 않았을 때, 존재를 증명해버리는 것은 폭력적이다. 사진이 가진 가차없는 증명성 때문에, 피사체는 사진에 찍힌 자기 존재를 부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수잔 손탁(Susan Sontag, 1933-2004)은 사진의 공격성을 읽는다. 꼭 사람을 찍어야 할 때, 구본창은 대개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맨 얼굴보다는 탈을 쓴 얼굴을, 다가오는 얼굴보다는 사라져가는 얼굴을 찍는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쓰려는 시대에는 아예 진짜 가면을 찍는 게 낫다는 양, 모두가 다가올 때는 멀어지는 이를 찍는 게 낫다는 양, 모두가 정면을 들이댈 때는 뒷모습에 진상이 있다는 양. 구본창은 피어나는 얼굴보다는 죽어가는 얼굴을 찍는다. 구본창은 살아 있는 나비보다는 박제화된 나비를 찍는다. 자신의 영혼을 탈취하러 온 사진사 앞에서 더 이상 안절부절 할 필요가 없는 사물, 혹은 사물에 가까운 것을 찍는다.

구본창은 사물 중에서도 비교적 소소한 것을 찍는다. 간직된 것보다는 버려진 것을 찍는다. 번성하는 것보다는 쇠락해가는 것을 찍는다. 주목받은 것보다는 주목받지 못한 것을 찍는다. 신제품보다는 구제품을 찍는다. 이름 있는 것보다는 이름 없는 것을 찍는다. 화려한 고려청자보다는 단정한 조선백자를 찍는다. 화려하게 치장한 물건보다는 그 화장을 지울 때 쓰는 비누를 찍는다. 현재의 영광을 찍기보다는 지나간 영광을 찍는다.

거대한 성문을 찍기보다는 입구를 통과하는 바퀴가 모퉁이와 부딪히지 않도록 설치한 쇠말뚝(chasse-Roue)를 찍는다. 그 쇠말뚝은 열고 닫히는 문을 오랫동안 지켜보아왔다. 그 문을 지나는 사연 많은 사람들을 오랜 세월 응시해왔다. 그리고 스스로 닳아버렸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도 닳은 문턱에 대해 노래한다. “문턱: 사랑하는 두 사람에겐 무엇을 뜻할까./오래된 그들의 문턱을 조금 더 닳게 만든다는 것은,/그들보다 앞서 지나갔던 많은 이들에 이어 그리고/앞으로 올 많은 사람들에 앞서서....그리 가볍게.”

요컨대 구본창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부터 미적 도약을 꿈꾼다. 하찮은 것을 성스럽게 만들고 피상적인 것을 깊이 있게 만들기를 열망한다. 이미 깊이 있다고 알려진 대상으로부터 그런 도약을 꿈꿀 필요는 없다. 이미 아름답다고 알려진 대상으로부터 미적 도약을 꿈꾸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직 미적 명성이 없는 사물로부터, 아직 그 깊이가 드러나지 않은 사물로부터, 드러나지 않은 층위를 품고 있는 사물로부터 무엇인가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래야 보이는 것 이상을 보여줄 수 있으므로. 그래야 느끼는 것 이상을 느낄 수 있으므로. “사물들 스스로도 한 번도 진정으로 표현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구본창의 비누  

비누는 가장 일상적인 사물이다. 구본창은 그 비누를 찍는다. 구본창의 비누 사진은 일상 소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한 현대 사진 흐름의 일부다. 그런데 왜 하필 비누란 말인가. 비누는 소모품이다. 오랫동안 곁에 두고 함께 할 손때 묻은 물건이 아니라, 잠시나마 곁에 묻어온 손때를 씻어낼 일상의 소모품이다. 자기 글을 길이길이 남기고 싶다? 바위에 새겨라. 후대에게 길이길이 전해질지니. 자기 글이 곧 사라지게 하고 싶다? 비누에 새겨라. 조만간 누군가에 의해 소모될 터이니.

비누는 소진, 소멸. 그것도 꾸준하고 느린 죽음을 표상하기 좋다. 부서진 비누는 예정된 파멸을, 빈틈없이 진행되어온 소진을 증명한다. 비누의 속성은 소진되는 데 있고, 구본창은 바로 거기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구본창이 찍은 그 어떤 비누도 멀쩡하지 않다. 구본창은 그냥 비누를 찍는 게 아니라 녹고 마모되고 닳은 비누를 찍는다. 구본창이 포착한 비누는 이미 소진 중이었되, 지금쯤은 더 소진되거나 사라져버렸을 비누다. 구본창의 비누는 아름답게 죽어가는 비누다.

그리하여 구본창의 비누 사진을 보는 사람은 비누를 보는 게 아니라 비누가 경험한 시간을 본다. 인간에는 인간의 시간이 있고, 사물에는 사물의 시간이 있다. 인간은 자신을 마모하고 있는 시간을 의식하지만, 비누는 자신을 녹이고 있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다. 시간을 의식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시간 속의 비누를 봄으로써 인간은 비누가 경험한 혹은 경험할지도 모르는 시간을 상상한다. 비누의 시간을 상상하며, 자기 역시 필멸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사진은 시간에 의해 구타당한 존재의 상처를 찍기 좋은 매체다. 사진은 소진, 소멸, 죽음, 그것도 꾸준하고 느린 죽음을 환기하기 좋은 매체다. 프랑스의 사상가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에서 사진에는 존재 증명과 부재 증명이 공존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사진은 “그것의 지시대상을 상실한 모습처럼 읽힌다.” 사진은 “미래의 죽음을 말한다.” 그렇지 않은가. 사진은 현장에 피사체가 존재했음을 증명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과거의 일이라는 사실을 환기함으로써 피사체의 부재까지 환기한다.

그림은 사진만큼 이 일을 잘 해낼 수 없다. 거기 대상이 거기 존재했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식을 사진만큼 통절하게 일깨우지 못한다. 그림은 사진만큼 대상의 존재를 확증하지 않기에 깊은 멜랑콜리를 남기기 어렵다. 바르트가 말했듯이, 죽은 배우의 그림이 아니라 죽은 배우의 사진이 멜랑콜리를 남긴다. 마치 죽은 가수의 녹음된 목소리가 우리에게 마음의 생채기를 남기듯이. 수잔 손탁은 말했다, 피사체는 찍혔다는 바로 그 이유 하나로 비애감을 띠게 된다고. 실로 사진은 필멸자에게 적합한 매체다. 그래서 사진을 보며 우리는 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구본창은 결국 덧없음을 찍는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구본창은 덧없음과 더불어 영원을 찍는다. 이것은 필멸자인 비누가 사진으로 복제되어 영원히 살아갈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구본창의 카메라에 포착된 비누는 그 순간 잠시 정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정지 순간은 사진가 로이 디커라바(Roy DeCarava)가 말한 장대높이뛰기의 정지 순간과도 같다. “나의 사진은 즉각적이지만, 동시에 영원하다. 내 사진은 영원이 되는 어떤 순간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경우와도 같다. 자, 그는 뛰기 시작한다. 마침내 솟구쳐 오른다. 다시 낙하한다. 그런데 그가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바로 그 순간에는 아무 움직임이 없다. 그는 솟구쳐오르지도 낙하하지도 않는다. 그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다. 나는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린다. 바로 그 순간에 모은 힘들이 융합하고, 모든 것들이 평형을 이룬다. 그것이 영원이고, 그것이 재즈다.” 구본창은 비누가 경험한 시간에서 영원을 포착한다.

구원이란 시간의 수인(囚人)이 되는 일도 아니고 아예 시간이 없는 곳으로 탈옥하는 일도 아니다. 구원이란 자신이 시간 속에 있을 뿐 아니라 영원 속에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영원에 접속된 사진은 이제 피사체의 매개체에 불과하지 않다. 그것은 이제 아무것도 매개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사물이다. 그리하여 구본창의 비누 사진을 응시하고 있으면, 그가 현실 속 어느 특정 비누를 찍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때 망막에 맺히는 것은 더 이상 특정 대상의 시각적 정보가 아니라, 미적 위엄을 가진 별도의 존재다.

한갓 비누가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것일까. 인간의 삶은 더러워져 간 시간이지만, 비누의 삶은 남의 더러움을 씻어내 간 시간이다. 그래서 비누의 시간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자기 파괴를 통해 얻은 아름다움이다. 자신의 효용을 다할수록 비누는 점점 작아져간다, 부스러져 간다, 사라져간다. 더러운 무엇인가를 씻고, 그 결과 자신은 사라져 간다. 사진가 구본창은 비누에서 자기 파괴적 구세주의 면모를 포착한다. 비누는 보급형 구세주다. 비누 사진은 보급형 성화(聖畫)다.

 

구본창의 달항아리

구본창의 달항아리(민무늬 백자대호) 사진을 음미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아름다운 물건을 아름답게 찍었다는 선입견을 떨치는 것이다. 달항아리의 명성이 원래 그토록 자자했다면, 구본창은 아름다움을 발견한 사람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소문을 좇은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마치 비누가 일상의 물건이었던 것처럼 달항아리도 원래 일상의 물건이었다. 그러나 달항아리에 대한 세간의 인기와 더불어 달항아리가 원래 심미적 대상이 아닌 범용한 일상의 물건이었다는 사실이 잊혀져 간다.

“따뜻한 순백의 색깔, 너그러운 형태미, 부정형의 정형이 보여주는 어질고 선한 맛과 넉넉함, 그 모두가 어우러지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정녕 한국인의 마음, 한국인의 정서, 한국인의 삶에서만 빚어질 수 있는 한국미의 극치.” 이것은 달항아리에 대한 전(前) 문화재청장의 찬사다. 이처럼 달항아리는 일상보다는 한국미를 대표하게 되어버렸다.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세계적(?) 석학이라는 프랑스의 기 소르망(Guy Sorman)은 2015년 강연에서 “백자 달항아리는 어떤 문명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한국만의 미적, 기술적 결정체”라며, 프랑스의 모나리자에 견줄만한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로 달항아리를 추천했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평창 동계 올림픽 성화대를 달항아리가 장식했으며, 유명 연예인들은 달항아리 옆에서 홍보용 사진을 찍고, 수백명의 도예가들은 오늘도 달항아리를 만든다.

동시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라는 점에서, 달항아리는 한국미를 운운하거나 민족 감정에 호소할 만하다. “하늘에 순응하는 민족이 아니고는 낳을 수 없는” 예술품이다. “조선은 공예 왕국이었고, 조선 공예를 대표하는 것은 백자이며, 백자의 제왕은 달항아리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자 달항아리는 조선왕조의 상징이며 나아가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달항아리가 조선 후기에 제작되어 유통되었을 때, 조선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의식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도자 연구자 김규림에 따르면, 달항아리라는 명칭은 물론, 그에 해당하는 다른 명칭조차 조선 후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즉 조선 시대에 달항아리가 하나의 독립적인 백자 유형으로 인지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료가 부족해서 확언하기 어렵지만, 연구자들은 대체로 달항아리가 조선시대에 보관 용기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즉 달항아리는 식재료나 액체류를 담던 일상 용기였지 심미적 완상(玩賞) 대상으로서 예술품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언제부터 이 달항아리는 심미적 완상 대상이 되었나. 알다시피, 달항아리는 (고려청자에 비해) 저평가되어 오다가, 1920년에 이르러 야나기 무네요시 (柳宗悅, 1889-1961) 등 일본인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아무런 장식이나 꾸밈없이 덤덤한 색상과 기형(器形)만으로 아름다움을 표출해 낸 조선백자의 조형 의식은 식민지 미술 사관 아래 묻혀버렸다”는 단언은 적어도 달항아리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렇게 회고한다. 달항아리를 사들이는 자신에게 “조선 물건 따위를 모으는 짓을 하는, 보는 눈이 없는 놈이라고 험담을 했다. 당시 고려자기의 명성은 여전히 높았고, 조선은 말기의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20세기 초만 해도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달항아리가 가진 아름다움의 핵심은 무엇인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말대로, 달항아리는 동양사상의 핵심인 무(無)나 공(空)이 구현된 것인가. 혹은 한국의 일부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주역의 태극(太極)이 구현된 것인가. 그러나 달항아리와 같은 백자가 철학적 개념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화여대 박물관이 소장 중인 철화백자매죽문시형항아리(17세기)에는 다음과 같은 싯귀가 적혀 있다. “中虛足容物.” (속이 비어 있어서 물건을 담을 수 있네) 교토 국립박물관이 소장 중인 청화백자시명팔각병에는 “宏其量容於物也.” (용량이 커서 물건을 담네)라고 적혀 있다. 이로써 미루어 보건대, 그보다 더 단순하고 큰 달항아리의 부피는 철학적 상징으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많이 담을 수 있는 실용성 때문에 중요하다. 달항아리의 비어 있음은 철학적 비어 있음이 아니라 도구적 비어 있음이다.

도구면 어떠랴, 거기에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되지! 그리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학자라는 고유섭은 달항아리에서 “무계획의 계획”을 발견하고, “구수한 맛”을 느끼고, 화가 김환기는 도공의 무심(無心)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형태와 빛깔에 감동했다. 실로 달항아리는 고려청자나 동시대 이웃나라 자기에 비교해서 계획이 없는 듯하고, 거친 듯하고, 그리하여 구수한 듯하다. 그러나 그런 느낌조차도 오늘날의 미감(美感)이다. 달항아리가 유통되던 시대를 살았던 학자 박제가(朴齊家, 1750-1805)는 <북학의>(北學議)에서 중국과 일본 자기에 비해 조선 자기가 거칠다(我國甆器極麤)고 한탄했다. 그리고 그 거친 면모는 조선의 순박한 마음과 연결되는 게 아니라 거친 마음과 거친 풍속, 거친 일처리와 관련된다고 비판했다.(此豈器之故哉, 始也工麤, 習焉而民麤, 始也器麤, 熟焉而心麤, 轉輾成俗, 一甆之不善, 而國之萬事皆肖.)

그러면 달항아리는 아름답지 않단 말인가? 나 역시 옛 달항아리가 실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깊이 있는 백자의 살결”이나 “둥근 맛” 같은 데서만 오지 않는다.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원래 예술품이 아니라 그저 기능에 충실한 일상 용기였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거친 일상 용기가 정교함에 질린 감식가의 눈을 자극하고 말았다는 아이러니에서 온다. 그리하여 결국 무엇을 반드시 담아야 하는 노역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나 쉬게 된 달항아리의 생애에서 온다.

따라서 김환기의 달항아리 그림을 볼 때 나는 민족 문화뿐 아니라 일상용품에서 예술품으로 도약한 사례들을 떠올린다. 이를테면 부엌 일상 용기를 그린 네덜란드 정물화를 떠올린다. 꿀이나 기름을 무겁게 안고 있던 달항아리도 이제 정물화 속 용기들처럼 쉬게 된 것이다. 달항아리의 비어 있음은 이제 도구적 비어 있음에서 심미적 비어 있음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하여 달항아리의 이미지를 볼 때 나는 미국의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캔” 그림이나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의 “변기” 사진을 떠올린다. 희고 낡은 달항아리나 낡은 수프캔이나 흰 변기나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의 정수”이기에 아름다움으로의 도약이 가능했다. 타고난 귀중품들은 이미 아름다울 거라는 기대가 있기에 그런 심미적 도약이 불가능하다. 옥션에서 수십억의 고가에 팔려나가는 귀중품이 되면서, 상품 홍보를 위해 유명 연예인이 달항아리 곁에 서게 되면서, 달항아리 역시 자기 아름다움의 바탕이던 “아무것도 아니었던” 상태를 빠르게 잃어가는 중이다.

그렇게 달항아리의 사진에 사람과 자본이 틈입할 때, 그것은 달항아리의 자유자재(自由自在)와 자급자족을 침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 달항아리는 힘없이 다시 무엇인가의 도구로 전락한다. 누군가를 치장하기 위한 도구로. 혹은 무엇을 광고하기 위한 도구로. 용기(用器)로 쓰이지 않을 때조차도 달항아리는 수단화되는 것이다. 달항아리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그것을 쓰임에서 건져올린 그 순간이다. 이를테면 구본창이 달항아리를 사용가치로부터 건져 올린 그 순간이다. 실로 구본창의 사진은 지친 사물이 사용자와 맺는 관계로부터 해방되어, 새롭게 관객과 관계 맺기를 바라지 않던가. 그것도 “사물들 스스로도 한 번도 진정으로 표현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구본창의 비누 사진과 백자 사진에 공통점이 있다면, 예측 가능한 배경과 사용자가 소거되어 있다는 점이다. 세면대 앞의 비누를 찍거나, 창고에 놓여 있는 비누를 찍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련한 무대 위에서 찍는다. 부엌에서 누군가 달항아리에 기름을 채워넣는 모습을 찍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마련한 무대 위에서 찍는다. 구본창에게서 프레임은 그처럼 사물과 세계의 기존 관계를 정지시킨다. 지친 난민과도 같은 사물을 프레임 안으로 받아들이고 욕망이 들끓는 세상과 인간을 프레임 밖으로 추방한다. 세상에 대한 혼탁한 정보를 한껏 비워낸다. 그리하여 그 프레임은 사용 대상을 응시 대상으로 바꾼다. 구본창의 사진을 음미하려는 이라면 누구나 세상을 사용하기를 멈추고 세상을 응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물은 이제 자신의 사용 목적으로부터 해방되어, 무대 위에서 새롭게 관객과 만난다. 구본창의 사물 사진에서 프레임은 곧 무대이다.

 

에필로그-고해하는 사물

구본창이 마련한 이 무대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그것을 고해소(告解所)라고 부르겠다. 고해성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고해소는 대개 성당 내 어두운 구석에 있다. 구본창의 조명은 바로 그 고해소를 비추는 전등이다. 고해가 진행 중일 때 고해소에 전등이 켜지듯, 구본창이 사물을 촬영 중일 때 조명이 켜진다.

구본창이 프레임한 고해소에 들어간 사물은 고요하다. 누군가 비누를 가지고 씻는 소리, 누군가 달항아리에 액체를 붓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용처를 떠나 고해소로 온 비누와 달항아리는 침묵한다. 그들에게 구본창은 천천히 말을 건넨다. 더 이상 숨기지 말라고. 그들에게 조명을 비추기 시작한다. 이래도 숨기겠는가. 기다려도 침묵하는 사물에게 카메라의 각도를 조절한다. 이래도 정녕 숨기겠는가. 그래도 말이 없는 사물에게 렌즈가 조금 더 다가선다. 이래도 끝내 숨기겠는가. 어느 순간 사물은 고백하기 시작한다. 아름다움을 자백하기 시작한다. 그간 숨겨서 미안해요, 실은 저 역시 아름다운 존재였어요. 찰칵. 구본창은 바로 그 순간을 찍는다. 이처럼 구본창은 사물을 프레임에 가두고 사물의 고백을 듣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구본창의 사물 사진을 보는 사람은 사물의 고백을 함께 듣는 사람이 된다.

구본창은 왜 사물을 찍는가? 사물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찍는다. 사용가치로 다 환원되지 않는 존재의 측면을 증명하기 위해 찍는다. 시간 속에 잠시 존재했던 아름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찍는다. 그간 사물들이 스스로를 한 번도 표현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찍는다. 마치 두이노의 비가에서 릴케가 노래한 것처럼 찍는다. “이곳에 있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든 것, 덧없는 이 모든 것이 분명 우리를 필요로 하고,/ 진정 우리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가장 덧없는 존재인/ 우리의,/ 모든 존재는 한 번뿐, 단 한 번뿐, 한 번뿐, 더 이상은 없다./우리도 한 번뿐, 다시는 없다. 그러나 이/한 번 있었다는 사실, 비록 단 한 번뿐이지만:/지상에 있었다는 것은 취소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