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진 가닥들
글.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
이원성은 서양문화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 중 하나이다. 대립항들의 병치, 그리고 그것들을 삶의 방식에 적용시키는 일은 우리가 동양사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심오하다. 가령 도가에서 말하는 정체성은 자기와 세계 간의 관계에서 구축되는 것으로 서양의 정체성 개념과 다르다. 다시 말해 도가에서의 정체성이 인간과 자연이 세계의 일부가 되는 그 동등함을 의미하는 반면, 서구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그/그녀가 타자와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방점을 둔다. 한 단어, 두 가지 의미.
이렇게 타인과 구별되는 자아로서 개인이 갖는 자의식과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지식과 자율을 갈망하게 만든다. 이는 개인의 자유라는 신성불가침의 영역, 자기인식, 그리고 결국은 특정 사상과 문화의 헤게모니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태도는 더 높은 깨달음의 경지인 물아일체를 이루기 위해 자아의 소멸이 필수적인 동양적 명상과 대조를 이룬다.
도가 윤리학의 삼보 즉, 자애, 검약, 겸허는 구본창의 많은 작품에서 발견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특성들은 그의 작업이 광활한 현대미술세계 안에서 그를 바로 알아 볼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검약이라는 단어를 소박함 또는 미니멀리즘으로 대체해보면, 그것은 그의 연작들, 특히 지난 20년간 그가 전개한 작업들을 특징짓는 관조적 철학에 더욱 잘 들어맞는다. 솔직, 검약, 겸손은 그를 한 인간으로 규정하는 개념들인 동시에 그의 이미지를 관통한다. 이를 작가와 작품 사이의 공생관계로 정의할 수 있는데,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연작들에서 나타나는 정신성과 대조되는 형식을 취하고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이중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슬픔, 좌절감, 고뇌, 고통 또한 그의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은 1980년대 초반 독일유학시절의 초기작들과 그가 서울에 귀국하자마자 제작한 작품들을 살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수년간 그가 이러한 감정들을 쏟아 부은 혼란스러우며 파편화되고 뒤섞인 이미지들은 형식과 구성상 강렬한 본능의 표출임에 틀림없는 표현주의적 작품들로 귀결되었다. 뿐만 아니라 폴라로이드 셀프포트레이트, 거리사진, 인체의 탐구, 퍼포먼스적 기록, 설치, 콜라주와 같은 다양한 사진기법들이 이 시기에 시도되었다. 지금에 이르러 이러한 요소요소들은 첫째, 아직 완결되지 않은 작가 정체성의 모자이크를 완성하고, 둘째 방대하고 복합적인 그의 사고영역과 그가 실제 삶에 적용하는 범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셀프포토레이트 작업들은 세계 안에 존재로서 자신을 부각시키고, 사회가 강요하는 길에 대한 저항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형성하는 자아정체성과 밀접하게 관계된 감정적 충동과 여전히 자아형성 과정에 있는 작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잘 담겨있다.
단 한 장뿐인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이루어진 이 연작은 군부독재 하에서의 고뇌와 자유를 향한 갈망을 표현한 타이완 사진가 장 자오탕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2008년 구본창이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기획한 전시 《숨겨진 4인전》에 장 자오탕의 작업을 포함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개인으로서도 작가로서도 공감과 관용은 그의 다면적 정체성을 이루는 특성들 중 하나이다.
1991년과 2002년 사이에 작업한 《태초에 In the Beginning》 연작에서 구본창은 인간의 운명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성찰을 전개한다. 검은 실로 인화지 조각들을 꿰매어 한 남자의 신체를 마치 파편화된 캔버스처럼 제시한 이 작품은 우리 자신의 파편화에 대한 은유이자, 바늘이 인화지에 만든 무수한 구멍들과 같이 삶이 우리의 살갗에 남긴 흉터들에 대한 은유이다. 이 작품은 자화상이라기보다는 모든 신체를 환유하는 하나의 신체이며, 그의 감정이 리좀처럼 뻗어나가도록 비옥한 지형을 제공해주는 상징적 영토이다. 모든 조각들은 유일한 각인이며 각각의 묶음은 고유의 개별성을 가지는데, 이는 사진의 본질 중 하나인 복제가능성을 무너뜨린다. 이 연작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활동하는 미국 작가 마이크와 더그 스탄(스탄 형제)의 사진작업과 상당히 유사한 형식적 특성을 갖는데, 이러한 점은 구본창 작업의 보편적 특성을 강조한다. 불과 몇 년 전 과테말라 작가 루이스 곤잘레스 팔마 또한 얇은 종이 조각들을 붉은 실로 꿰매어 정체성의 형성, 다중적 자아, 그리고 인생을 거치며 봉합한 상처들을 암시하는 일련의 초상사진들을 제작했는데, 이렇게 멀리 떨어진 장소들로부터 유사한 해법이 도출된다. 이것은 작가들 간의 작업적 영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 시대마다 목도할 수 없는 동시대적인 감각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치 빈틈없는 구획인 양 국가와 문화에 따라 작가들을 분류하는 추세가 되풀이 되는 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동시에 구본창의 작품이 갖는 보편성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는 그가 좋은 영향을 주는 한편 풍부한 영감을 받기도 한 친구들이 전세계에 무수히 많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되는 바이다.
1985년 독일에서 학위를 마친 구본창은 서울로 귀국했다. 다시 만난 서울은 낯설기만 했고, 도가적 전통이 소멸한 서울은 소외감마저 불러일으켰다. 더 이상 서울은 친숙한 곳이 아니었다. 독일에서 외국인이었던 그는 이제 고국에서 이방인의 감정을 느꼈다. 이 시기에 4장의 사진이 모자이크로 구성된 연작 《긴 오후의 미행》(1985~1990)의 작업을 시작했다.(한국에서 한자 ‘死’와 동일하게 발음되는 숫자 ‘4’는 죽음과 연관된다). 모두 흑백사진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에서 구본창은 서로 무관한 사진들간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것은 이미지들의 무질서한 흐름 속에 감추어진 자아를 찾는 “혼란스러움”에 접근하는 그만의 방식인 것이다. 당시의 서울은 올림픽 개최를 목표로 급변하고 있었고, 롤모델인 미국을 모방하면서 전례 없는 민족주의와 과도한 의욕을 표출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이루어진 변화들은 분명 발전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 급속함과 초조함으로 서울은 스트레스 가득한 도시가 되었고 사람들은 소외의 상태로 내몰리게 되었다. 한국에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 도교적 정서는 노동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으로 변형되었다. 구본창이 바라본 대로 한국에서 도가적 시간관은 단순한 여가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점에서 그의 견해가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과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한병철은 노동을 우선시하고 그것이 개인적 성과를 올리는 길이라고 믿으면서 몰두하게 되는 자기착취과정 즉, 일종의 자기소외에 주목한 바 있다.
1980년대 구본창은 유럽에 머물면서 여러 국가들을 여행했고, 거리의 모습들을 컬러사진으로 포착했다. 이후로도 여행을 할 때마다 이러한 사진들을 찍었고, 그것은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서도 핵심적으로 보여지는 작품 역시 촬영한 특정 장소와 시간이 중요하지 않은 도시풍경이다. 그가 지속적으로 응시하는 것은 리마든 베이징이든 도쿄든 파리든 서울이든 상관없이 모든 현대도시에 공통적으로 잠재된 혼돈을 드러내주는 초현실주의적인 흔적들이자 발전과 과거의 탈접합이다. 도시풍경 속에서 비장소의 기호들을 예리하게 포착한 이 사진들은 그의 연작 대부분을 특징짓는 피사체의 아스라한 아름다움이나 감정이입의 층위를 의식적으로 제거한 황폐함의 시학을 전개한다. 여기서 내부로 향하는 그의 시선은 개인 정체성과 집단 정체성의 불협화음에 직면한다. 라캉에 따르면, 주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기의 안이 아닌 바깥에서 발견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주위환경 속에서 최소한 자신의 일부분만이라도 발견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견해는 그간 우리가 모든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있는 자기 내면에 집중하기 보단 바깥 세계에 몰두했다고 일침한 2,500년전 헤로도토스의 주장과 대비 되면서도 상호 보완된다. 정체성이 갖는 이원성의 측면에서 이러한 시각들은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정체성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단계마다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구본창이 독일과 한국에서 젊은 시절부터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소외감은 유럽을 여행하는 당시 찍은 명백한 이미지들로 표현되었다. 이는 기록된 것이 해석상의 애매함을 낳는 어떤 이미지보다도 확실한 가치를 갖는다는 독일 프로테스탄트 성상파괴주의의 자취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그의 도시사진은 여전히 동일한 장소들의 생경함에 주목하지만, 그 사진들은 리얼리티보다는 그것들이 어떻게 리얼리티를 은폐하는가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여기서 리얼리티는 사칭 또는 위장으로만 등장한다. 그 사진들은 시각적 매개물들 즉, 오브제와 장면들을 통해서 개인의 소외를 은밀히 노출시키며 사회적 기획이 실패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한 단서는 재현대상 또는 그 구상적 차원이 아닌 “외부”, 다시 말해 구본창 자신과 관객의 기억에서 발견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획득 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과 집단의 맥락은 곧 사라지거나 바뀌는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물질과 기억』에서 앙리 베르그송이 언급하듯이, “모든 지각은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제시되는 자료들을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가져온 무수한 세부정보들과 뒤섞는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기억은 현재의 지각을 대체하는데, 우리가 가지게 되는 현재 지각에 대한 일부의 단서들은 단지 과거의 이미지들을 불러오는 ‘신호’로 소용될 뿐이다.” 리얼리티가 남긴 자국들은 체제의 탈-분절된 파편들을 노출시키면서 강조하는 가면들로 제시된다. 그 결과 파편들은 피사체라기보다 다른 것들에 대해 말하는 은유가 되면서 사진적 레디메이드로 기능한다. 이 모든 시각적 은유들은 구본창의 삶과 작품의 모든 단계마다 끼어드는 슬픔, 외로움, 퇴폐, 혼란의 미묘한 결을 포함한다. 이렇게 사진의 한계에 부딪히며 충돌을 일으키는 일은 그가 도가적 이원성을 내면화하며 그만큼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인 시간의 흐름과 죽음을 앞둔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부패는 구본창이 애초부터 다양한 관점에서 언급해왔던 화두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연작은 그의 부친이 숨을 거두던 1995년에 제작된 《숨Breath》일 것이다. 이 화두들은 그의 최근작들에도 등장하는데, 멈출 수 없는 시간의 경과라는 주제는 연작 《탈Masks》과 《백자Vessels》에서와 같이 여타의 주제―한국의 전통 예술과 문화에 대한 보고와 같은―에 대한 주의를 환기한다. 두 작품 모두 비평적으로 한국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일종의 사진적 분류학을 제시한다. 예술적 실천에서 대개 하위의 장르로 인식되어온 민예의 드러나지 않는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백자》 연작은 일제 강점기에 탈취당한 자연스런 형태의 도자기들이 가지는 가치를 되찾으려고 한다.
구본창의 달항아리들이 갖는 명성은 달의 모양과 색채를 연상시키는 유약의 희부연 빛깔과 형태로 인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백자는 15세기 당시 왕실의 도자기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그 도자기 중 대다수는 국외로 반출되었고 전세계 수집가와 박물관에 판매되었다. 구본창은 백자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국가들을 돌아다녔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과 주름이 늘어나는 노년의 피부처럼 시간이 그 표면위로 새긴 얼룩과 긁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도자기들은 구본창의 정교한 사진 연작으로 재탄생하면서 한국문화의 고유성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가치를 복원한다. 그의 명상적인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이 도자기 사진들도 자신의 존재감을 묵묵히 발하고 있다.
기억의 물건을 수집하는 그의 열정은 물질적 소유와 사진 이미지로 포착하는 다른 형태의 소유로 대별된다. 두 가지 소유방식 모두 과거와 그것이 남긴 자취들에 대한 그의 경의를 표현하며, 그의 작품과 인성의 또 다른 특성을 이룬다. 여기서 구본창이 의도하는 바는 몇몇 작가의 매너리즘에서 발견되는 자기도취적인 감수성의 현시가 아니라, 대립면들의 공존이 모순을 일으키기보다 자연질서의 일부임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뇌를 감내하는 여정은 훨씬 수월해진다. 이러한 연유로 그의 작품에서 그의 존재는 서서히 지워지고 우리는 작품들이 전달하는 감추어진 의미에 대해 자문하지 않고도 사물들과 그 은유적 정황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과 무의식적 지각 경험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직관의 형태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