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정신

글. 가브리엘 보레 (Gabriel Bauret) (큐레이터/비평가)

 

1954년 아르헨티나 출신 음악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는 퐁텐블로 미국 음악원(Conservatoire américain de Fontainebleau)에서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의 작곡 수업을 듣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다. 당시 불랑제는 미국의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과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프랑스의 미셸 르그랑(Michel Legrand)과 같은 여러 작곡가 및 연주자들을 가르치며 음악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나디아 불랑제의 만남에 관한 내용은 불랑제가 퐁텐블로와 파리에서 했던 전설적인 강의에 대한 이야기들과 피아졸라의 일대기에도 기술되어 있다. 피아졸라는 벨라 버르토크(Béla Bartók),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등의 작곡가들과 같은 풍조의 음악 창작을 꿈꾸며 남미에서 건너왔지만, 자신이 그토록 숭배하던 교수로부터 비판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피아졸라의 곡에서 큰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불랑제는 그에게 그의 고국에서 연주되는 음악의 멜로디와 사운드를 들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이 반도네온을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대중적 멜로디로부터 영감을 받은 몇 가지의 곡을 연주하였다. 이에 불랑제는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이것을 계기로 피아졸라의 음악적 운명은 바뀌게 되었다. 자신의 뿌리를 간직한 채 고국의 음악적 전통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그것을 현대적 악곡과 접목시켜 작곡하는 방향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프랑스로 건너올 때 품고 있던 대서양 건너편의 음악을 모방하려는 욕구를 버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피아졸라는 이러한 방향성에 맞춰 작곡을 했으며, 이것은 그의 작곡에 영감을 준 거슈윈이 자신의 재즈 음악을 추구했던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구본창 작가의 회고전에 앞서 이러한 20세기 음악사의 일화를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구 작가의 운명이 또 다른 대륙과 문화의 발견과 만남을 통해 빚어졌기 때문이며 그의 작품세계가 여러 예술적 영향의 합류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1979년, 잠시 가족의 품을 떠나 다른 언어 및 문화와 친숙해지고자 하는 열망에 힘입은 그는 새로운 지평을 찾아 고국을 떠나게 되었다. 목적지를 독일로 정한 후, 그는 지인들에게 자신이 서울에서 전공한 경영학 공부를 그곳에서 계속 이어 나갈 예정이라 설명했다. 그렇지만 함부르크에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에 매료되어 등록하게 된 학교에서 사진학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취재를 통해 실전을 접하는 수많은 사진가들과 달리 구본창 작가는 실전을 지극히 시각적인 행위, 즉 조형적인 경험에 즉각 접목시켰다. 이러한 사실은 2011년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구 작가의 사진전에서 인터뷰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이러한 방향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그의 초기 작품들은 기록의 의도를 지니기 보다는 그가 선택한 시점과 레이 아웃의 틀 안에서 감지되는 형태에 대한 관심과 작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기묘함을 향한 끌림을 기반으로 한다. 그의 작품은 유럽의 도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디테일들을 발견한 아시아의 영혼이 느낄 법한 호기심으로 설명될 수 있는 반사적 반응이기도 하다. 구 작가는 주로 이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피사체를 선정하며, 실제로 파리의 건물 입구마다 마차의 통행으로부터 대문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석처럼 설치되어 있는 돌 또는 쇠로 만들어진 조형물에 관한 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그의 사진 작업은 유럽 작가들의 스타일을 반영하며, 현실에 대한 이해와 70년대 특유의 비전과 유사한 사진 공간 구성 방법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독일에서 학업을 마칠 무렵, 담당 교수였던 안드레 겔프케(André Gelpke)가 이 점을 지적했다는 사실은 상기 사진전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나디아 불랑제가 아스톨라 피아졸라에게 그러했듯, 겔프케 또한 구본창에게 독일 작가가 되려고 애쓰는 대신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뿌리를 인정하고 고국의 문화와 개인적 경험의 영향을 듬뿍 받는 한국 예술가가 될 것을 촉구하였다.

 

다양한 이미지와 오브제들에 대한 취향과 호기심은 구본창이 젊은 시절부터 일찍이 계발시켜 온 수집가 정신을 탄생케 했고, 그가 귀국 후 그려 나간 예술가로서의 행보에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구본창의 일부 개인전에서는 오브제 갤러리가 마련되기도 하는데, 국제갤러리 전시회 카탈로그에 소개된 프레임만 남은 텅 빈 액자와 같이 매우 흥미로운 오브제들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까지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평범한 오브제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비누(Soap)를 비롯한 그러한 오브제들이 결코 하찮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스토리들로 가득 찬 사물들임을 알 수 있다. 구 작가의 사진은 백자(Vessels)와 같이 오래된 역사를 담고 있거나 DMZ와 같이 훨씬 현대적이지만 한국인들에게 민감한 소재를 다루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관람객을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케 하는 대형 컬렉션의 관점에서 접근해볼 수도 있다. 금과 같이 작가가 매력을 느낀 피사체들의 형태, 색채, 소재를 조형적으로 복원시키기 위해 정교하게 촬영하되, 해당 오브제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분명히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사진들은 시리즈 방식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며 목록이나 축적의 논리로부터 철저히 벗어나 촬영된 것이다. 각각의 오브제는 고유의 정체성을 지니며 이 점에 있어서 구본창의 의도는 초상화가의 의도에 비견할 만하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유명 시인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각각의 오브제는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4년에 작업을 시작한 « 비누 » 시리즈의 경우, 각각의 비누가 저마다 고유의 색깔과 질감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같은 기간에 작업한 도자기 시리즈인 « 백자 »의 경우 이탈리아 화가인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 )의 작품과 순간적으로 흡사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모란디는 비슷한 각도와 빛 아래에서 자신의 작업실에 있는 같은 항아리, 화병, 찻잔 및 깔때기들을 관찰했고 이를 바탕으로 무한한 색조로 구성된 훌륭한 회화 작품을 탄생시켰다.

 

구본창의 시리즈들은 서양 예술 학교의 교육과 아시아 역사문화 전통의 합류점에 위치한다. 구 작가의 작품 중 대부분에서 드러나는 극도로 순수한 시각적 형태에 대한 취향은, 그가 장 시메옹 샤르댕(Jean Siméon Chardin)과 같은 화가들의 정물화의 역사 및  바우하우스 학교의  교육 내용에 대해 갖고 있는 관심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우하우스의 교육은 모두가 알다시피 20세기 유럽 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여러 예술가들을 지도한 독일 출신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유명한 명제인 «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 »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 자연의 연필(Pencil of Nature) » 시리즈는 어쩌면 19세기 영국 사진작가 윌리엄 헨리 폭스 탤벗(William Henry Fox Talbot)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이것은 미완성으로 남을 컬렉션인 동시에 18세기에 덴마크에서 수집된 모든 식물들을 시각적으로 정리한 탁월한 토종식물 목록인 « 플로라 다니카(Flora Danica) »와 같은 식물 백과사전의 전통에 부합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본창은 독일 유학을 통해 배우게 된 현대미술 특유의 개념적이고 시리즈적인 모델에 따라 창작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유럽 관객들의 눈에도 익숙한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다.  사진의 피사체와 형태를 떠나, 전반적으로 작품 자체가 우리에게 « 말을 거는 » 철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특수성은 구본창의 시각적 화풍에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작업 전반에서도 희미하게 드러난다. 그의 시리즈들의 제목을 구성하는 단어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작품에 대한 해석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 시간 », « 숨결 », « 재 », « 자연 », « 흰색 », « 내부 », « 천국 », « 탈 »을 비롯해 그의 최근 개인전 제목이었던 « Incognito(익명) » 등이 그 예시이다.  그의 사진들이 지닌 분위기를 여실히 반영하는 이 단어들은 공백, 부재, 죽음에 관한 생각을 넌지시 표현해 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물질이 정신에 자리를 내어 주는 셈이다.

 

이처럼 구본창의 사진 활동은 이 세상에 대한 비전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이쯤에서 20세기 프랑스 철학에 한 획을 그은 « 뭐라 말할 수 없는 것과 거의 아무 것도 아닌 것(Le je-ne-sais-quoi et le presque-rien)»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집필한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Vladimir Jankélévitch)를 소환해야 할 것 같다. 구본창은 자신의 생각을 가두는 대신 미세한 방식으로 집약하고, 이 생각들은 사진을 통과하여 그 사이에서, 심지어 사진의 틀 밖에서 포착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작품의 깊은 곳에 서식한다. 장켈레비치가 그의 유명한 저서의 서문에서 인용한 « 플라톤은 저서 ‘향연’을 통해, 연인들의 영혼이 원하고 있지만 표현할 수는 없고 오직 추측할 뿐인 수수께끼와 같은 « 다른 무엇 »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라는 문구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