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진 유학기 (사진예술)
글. 구본창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지 4년이 지난 지금 새삼 유학생활을 회고한다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버리지 모르지만 유학생으로서 앞서 경험했던 것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의미에서 적으려 한다.
대학에서 예능계통을 전공하지 않았던 내게 사진가라는 현재의 직업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의아심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할 때 시각적인 아름다운에 관심이 많았던 어린시절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있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10년전 수출회사의 일개 직원의 쳇바퀴 도는 생활에서 탈피하고 싶었을 때 솔직히 나는 180도 전환되는 내 생활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논란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익숙한 생활, 내가 이렇게 이끌려온 어떤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선 미국과는 달리 학비가 많이 들지 않는 곳이라는 서독을 찾게 되었다. 나는 사진가라는 직업의 목표를 가지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내게 그러한 목표는 필요치 않았다. 일단 수출회사의 직원만큼은 내가 일생을 마칠 직업이 아니라는 화신이 있었다. 나는 시각적으로 감성적인 여러 매체를 이용, 표현해 보았고 그 중 점차 사진에 매료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유학을 가지 않고도 한국에서 사진을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유학생활 중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수확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던 용기와 내가 내 자신의 새로운 능력과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희열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많아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혼돈되는 미국과 달리 독일은 철저히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몰론 그곳에는 교포사회가 있고 한국생활들이 있었지만 나는 어렵지 않게 독일학생들과 친숙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나를 이제까지 소위 한국적인 테두리에서 보지 않고 이름 석자‘구본창’이라는 새로운 인간으로 만나주는 독일친구들의 부담 없는 태도 때문이라 생각한다.
함부르크는 일년 365일 중 200일이 넘게 비가 온다. 항상 햇빛이 쏟아지고 길거리에 밤 늦도록 술 마실 수 있는 도시에서 생활했다면 내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 본다. 유학생활에서 기억나는 것들-낮게 가라앉은 회색하늘, 끊임없는 실비,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회색빛 도시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붉은색 버스-독일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한다. 검소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중교통수단이 발달되어 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으스스한 북구의 겨울밤에 20분, 30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보낸 6년 만약 내가 멋진 승용차를 몰며 유학생활을 했다면 오늘 나는 다른 생활태도를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독일에 온, 대부분의 한국유학생들은 그리 대단하게 부유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멋진 스키장을 지척에 두고도 휴일이나 방학이 되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유일한 여가생활은 동네마다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거나 산보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학교생활 중 느낀 것은 독일인들은 학위에 대해서 우리처럼 결사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위 없이도 기술전문학교 혹은 고등학교 출신들도 남들처럼 생활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대우와 기회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대학을 들어온 학생들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졸업장을 받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학비가 거의 없는 독일에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입학한 학생들이라 수업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물론 각자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쳐진 기간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항상 과제제출기일이 되면 그동안 밀린 것을 보상 하기라도 하듯이 몇배 되는 양의 작품을 들고 오기가 보통이다. 그런 학생들로부터 받은 자극이란..... 나는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유학 간다는 것이, 꼭 좋은 교수와 좋은 환경이 당연하게 제공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수업이 대부분 많은 학생을 상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간의 긴밀한 관계가 부족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외국에서 발간되는 중요한 새책들이 거의 동시에 들어오고 또 여러 사람들이 해외에서 보고 왔기 때문에 국제적인 안목에서 사진을 불수 있는 시각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학교의 시설문제도 오히려 더 현대적인 장비를 많이 들여 놓고 있으며 학생들도 대부분 최신의 기재를 어려움 없이 소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족한 학교시설이나 교수만을 탓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유학시절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돌아오는 교수님들의 수업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일주일 동안 내 나름대로 작업한 것을 교수, 학생들과 같이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당다귀 구’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과제물 혹은 사진촬영준비를 위해 자동차도 없는 내가 양손과 어깨에 잔뜩 짐을 잔뜩지고 마치 힘겹게 짐을 실은 나귀처럼 아침마다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런 추억 속에서 정신없이 휩싸여 흘러간 6년이었다. 아마도 그런 생활과 훈련덕분에 한국에 온 이후 내가 어떤 어려운 경제적인 문제나 난관에 부딪쳐도 남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일과에 몸을 부대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양손, 어깨가 무거웠던 그 기분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돌아 온지 3년 남짓 강의를 하고 있다. 매학기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수업하면서 정말 나귀처럼 잔뜩 짐을 꾸려 가지고 나타나는 몇몇 학생들을 보면 지난날의 내 자신이 생각나 웃음이 저절로 날 때도 있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고 빈손으로 늦게 터덜터덜 들어오는 학생들에게는 빈번이 실망하기도 한다. 유학이든 아니든 문제는 본인의 추진력이라 생각한다. 유학을 통해 우리는 폭넓은 견문과 새로운 시각, 다양한 삶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곳 한국에서도 추진력이 없는 학생들이 막연한 환상에 젖어 유학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곳에서도 마음에 맞는 친구, 선후배, 교수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세계를 넓힐 기회는 있는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 독일대학에서 수업 받았던 몇몇 과목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것이 그렇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대체로 우리학생들보다 1,2학년 때 기초 조형실습을 많이 익힌다는 것, 그리고 불필요한 교양과목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며 강의 진행방법이 대부분 학생들의 작품을 평가, 토의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작업을 하는지에 대한 본인의 주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과제물들은 과목마다 틀리지만 매주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한 학기 중 이곳에서 많은 큰 과제1~3가지 주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곳에서 많은 교수님들이 무조건 출.결석을 철저히 점검하고, 과제를 많이 내주고, 과제를 해오지 않는 학생은 벌점으로 성적을 깍으라고 강력한 수업태도를 주장하신다. 또한 학생들 측에서는 과목수가 많고 과제가 무리할 정도로 부담이 된다고 불평한다. 어느 편의 주장이 옳은지?
3년째 강의를 하고 있지만 과연 이렇게 벌점위주의 성적평가가 바람직한가 반문하게 된다. 그렇게 된 데에는 물론 순간을 모면하려는 일부학생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교수의 벌점제도가 아니고 모두 자진해서 열심히 과제를 해오는 풍토가 될 때 애써서 해외유학을 갈 필요없이 학생들간에 이미 충분한 자극거리가 있을 것이며 수업시간은 활기를 띌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마친후 외국에서 당당히 그들과 작업을 비교할 수 있을 때 국제적인 작가들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우리는 항상 뒤늦게 철이 든다고 한다. 대학시절에는 아무리 누가 무어라 해도 본인의 사고능력밖의 이야기는 가슴에 와닿지 않는가 보다. 하긴 나자신도 뒤늦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으니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도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항상 최고의 상태는 못되는 법이지만, 언제나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며 자신을 계속 채찍질하는 마음가짐은 유학 기간중 얻은 생활태도이다. 어쩌면 내가 유학한 독일에서는 자기가 일한 만큼의 댓가를 정당하게 인정받고 보상되는 곳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도 그러한 날이 점차 오고있다고 믿고 있다.